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e 112 (문단 편집) == 개발사 == 1933년 말,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새로운 단좌 단엽 전투기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독일의 4개 항공사가 각기 새로운 전투기 디자인에 착수했는데, 아라도(Arado), 하인켈(Heinkel), 포케불프(Focke-Wulf), 바이에른 항공사(BFW, Bayerische Flugzeugwerke)가 그들이었다. 독일 공군이 이들 항공사에 요청한 전투기의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 1. 1개의 엔진을 탑재한 완전 금속제 단좌 단엽전투기이며, 기관총 2정(각기 1000 발 장전) 혹은 20 mm 기관포(200발 장전) 1정을 장착해야 한다. 1. 6000m 고도에서 400 kph 속력을 낼수 있어야 하며, 적어도 1시간 반 이상 비행 가능해야 한다. 또한, 한계고도는 10,000m 이상이어야 한다. 1. 최고속력으로 20분 이상 비행가능해야 하며, 조종석 시야가 좋아야 한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속력, 다음은 상승력, 마지막으로 기동성 순으로 우선순위를 둔다. 이전에도 He 51같은 복엽전투기를 만든 경험이 있던 하인켈 사는, [[스페인 내전]]을 통해 기동성보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훈 삼아 전투기 개발에 착수한다. 하인켈 사는 1933년 말부터 'Projekt 1015' 에 돌입했다. 주 디자인은 그들이 1930년대 초반에 개발한 단엽 우편 수송기인 He 70에서 영감을 얻었다. He 70은 하인켈 사가 개발한 첫 단엽 전투기였고, 처음으로 수납 가능한 랜딩기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처음으로 전금속제인 전투기였다.[* He 70은 실제로 [[스페인 내전]] 당시 2인승 폭격기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He 70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He 112의 디자인을 완성한다. [[파일:Heinkel_He_70.jpg]] He 112의 디자인 기반이 된 He 70. 하인켈 사는 He 70의 크기를 축소하고, 타원형의 금속제 주익을 갈매기익의 형상으로 설계함으로써 기체가 안정적인 이착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동체의 중앙에 설계된 개방형 콕핏은 조종사가 원활한 시야를 확보하기에 충분했고, 기존의 복엽기 조종사들이 새로운 기체 조종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첫 프로토타입인 V1이 1935년 9월에 개발되어 첫 비행을 했다. 원래 융커스-유모 210 수랭식 엔진을 장착하려 했으나, 장착 가능한 엔진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롤스로이스 케스트렐 V 수랭식 엔진이 장착되었다. 이 때문에 주익이 더 커지고 무거워졌으나, 결과적으로 중량이 기체 전체에 골고루 퍼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익에 하중이 덜 실리게 되었다. 비행 결과 선회력은 뛰어났으나, 롤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두번째 프로토타입인 V2는 1935년 11월에 개발되었다. V2는 융커스-유모 210C 엔진을 장착한 것과, 롤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더 작고 가벼운 타원형 주익을 장착한 것 외에는 V1과 동일했다. 하지만 V2는 시험 비행 도중 스핀 회복 시험에서 추락하여 조종사는 탈출하였으나 기체가 파괴되고 말았다. 결국 이는 He 112에게 큰 감점 요인이 되었고, 결국 경쟁작인 [[Bf109]]에게 경합에서 패배하고 만다. 마지막 프로토타입인 V3는 V2에서 좀더 커진 라디에이터와 동체 골조, 수직 안정기 등을 장착했고, 무장 장착을 위해 엔진 카울링에 개수를 거쳤다. 그러나 V3는 하인켈 사의 로켓 추진 시험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프로토타입들의 개발과 개수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He 112는 Bf109에 밀려 주력전투기로 채택되지 못하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하인켈 사는 후속작인 [[He 100]]의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 --칠전팔기-- 자세한 이야기는 [[He 100]]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